이 시기 돌궐의 가한은 묵철이 아니라, 여전히 골돌록이었다.<?-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돌궐문비명의 기재에 근거하면, 골돌록은 후돌궐 정권을 공고히 한 후, 서북쪽으로의 확장을 개시..
영순 2년(683), 돌궐이 선우부성을 공위했고, 도호부사마 장행사가 사로잡혀 죽었으며,(154) 선우도호부의 공능은 이에 이르러 상실되었다.(155) 이후, 돌궐인은 다시 창끝을 막북지구의 안북도호부로 돌렸다. 이전에 서술한 대로, 해 부는 당이 철륵, 회흘제부를 기미하여..
동일 비명에 기재된 바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 “돌궐의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说道 설도] : ‘나는 일찍이 국가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내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를 위하여 국가를 얻는가?’ - 그들은 말한다. ‘나는 일찍이 가한의 인민이었으나, (..
제 6절 형세의 취변과 삭방군의 설치<?-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지적할 만한 것은, 상술한 양 대도호부의 설치가 당조가 변지를 공제하기 위해 취한 조치 중 하나를 조성하는 부분이었다는 점..
그러나, 도호부의 설치는, 필경 당정이 직접 파병하여 주류시키고 수비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직관계통은 중앙에 직예되었다. 연연부의 도호 이소립은 당조의 관원이었고, 그 전에는 양주사마였다.(117) 이로 인해 당이 연연부를 설치한 것은 막북의 땅에 대하여 더 유효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