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성호(총 24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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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8/12 08:39
남인은 갑술옥사甲戌獄事 이후로 완전히 몰락해 소론이나 노론으로 당색을 바꾸는 사람들이 생겼다. 홍경보洪景輔․정내주鄭來周 등은 소론과 결탁했고, 권해權峐 등은 노론과 결탁했다. 그리고 경종 임인년(1722) 년간에는 남인 사이에 문내파門內派․문외파門外派․과성파..
- 성호 이익의 삶과 사상 -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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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 이익의 삶과 사상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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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8/11 10:36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로 북인정권이 무너지자 이상의 가문은 근기 남인으로 자정했다. 서인들은 북인정권이 망한 것은 북인의 독주로 자체 내에 분열이 생긴 때문이라고 생각해 남인을 관제야당으로 끌어들였다. 이에 이상의 가문을 비롯한 북인 중의 온건파인 소북세력도 남인에 ..
- 성호 이익의 삶과 사상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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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8/09 09:59
여주이씨 수원파의 중시조인 이상의(1560~1624)는 북인 중에서도 소북에 속했다. 그는 북인이었지만 중도적인 입장을 취해 인사권을 가지고 있을 때도 공평하게 인사를 행했다고 한다. 그는 북인 가문과 널리 혼인을 통하고 있었다.북인 가문과의 혼인 관계尙毅 志完 元鎭 叔鎭 志..
- 성호 이익의 삶과 사상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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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8/08 15:28
성호의 가문도 근기 학인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계손 이후에 여주이씨의 수원파는 훈구파의 일원이었다가 16세기 이후에 사림이 정치를 주도하는 사림정치시대가 되자 전향사림파로 변신해 계속적으로 중앙 정계에서 활약했다. 이 시대에는 가학에 바탕을 두기는 했지만 사우관계나..
- 성호 이익의 삶과 사상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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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 이익의 삶과 사상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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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8/05 02:21
2)학통조선 전기의 학통은 이색-권근-변계량-노수신으로 연결되는 관학파와 정몽주-길재-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로 연결되는 사학파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기호학파라 한다면 후자는 영남학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에는 사림파의 세상이 되어 훈구파 계열..
- 성호 이익의 삶과 사상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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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 이익의 삶과 사상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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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8/04 10:57
하진의 외동딸은 사천인 판서 목창명睦昌明에게 시집갔다.해는 동생 침의 아들 광휴廣休를 양자로 삼았다. 광휴(1693~?)의 아들 철환哲煥(1722~?)․정환晶煥(1786~?)․삼환森煥은 모두 학자이다. 삼환은 병휴秉休, 정환은 원휴元休에게 양자로 갔다.잠은 침의 막내아들 병..
- 성호 이익의 삶과 사상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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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8/03 09:10
은진(1630~1661)은 1645년(인조 23)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일찍 죽었다. 그의 장인은 동래인 판서 정세규鄭世規이다.주진(1633~1721)과 국진(1636~1712)은 현달하지 못했다. 국진의 장인은 동복인 판서 오준吳竣의 손자 오정한吳挺漢이다.명진(1641~1696)은 1675년(숙종 1)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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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8/02 09:35
지인의 손자 직溭(1644~1728)은 1675년(숙종 1)에 진사시에 합격해 지중추부사를 지냈으며, 직의 큰아들 국휴國休(1675~1721)는 1691년(숙종 17)에 진사시, 1710년(숙종 36)에 문과에 급제해 시강원 필선을 지냈으며,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현손 승지 만기萬紀의 딸(본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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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7/27 16:44
한편 성호의 가계에서 지리지地理誌를 많이 쓴 것도 학맥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정구가 대록지大麓志 를 비롯한 여러 읍지를 편찬한 것이나, 허목이 삼척지三陟志 를 편찬한 것을 표본으로 해 이상의는 성천부지成川府志 를, 이원진李元鎭은 탐라지耽羅志 를, 이중환은 택리지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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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7/26 10:04
성호는 기본적으로 유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구태의연한 유학자들과는 달리 항상 세상일에 관심을 가졌고 세상일에 대한 그의 의견이 쓰이지 않더라도 이는 지식인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즉 그는 경의經義와 세무世務를 함께 중시하는 실학자였다. 성호는 사장詞章 공부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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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7/24 08:09
성호는 농촌에 묻혀 살았기 때문에,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사치풍조가 만연하고 양반지주들의 치부욕致富欲을 자극해 소농민들이 토지로부터 소외되어 유랑생활을 하거나 고용노동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체험했다. 그리하여 그는 균전제를 주장했다. 균전제는 가난한 농민이 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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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7/23 08:26
사상성호는 다른 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유교적인 정치철학으로서 왕도의 확립과 보민保民을 주장했다. 그러나 성호는 수구적인 유학자의 틀을 벗어나 시세에 따라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농촌에 묻혀 살았기 때문에 왕정의 두 기둥이 토지문제와 민생문제 해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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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살아가는 이야기 by 블레이드|2010/07/22 10:35
이와 같이 성호는 천부의 자질과 성실한 학문태도로 세세한 것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통하지 않은 것이 없는 통유通儒가 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병휴는 성호를 퇴계 이후의 대유大儒로 추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의 학문은 어디까지나 주자와 퇴계를 배우는 데서부터 ..
- 성호 이익의 삶과 사상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