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세도정치(총 31개의 글)
'세도정치' 관련 최근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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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에 대한 최근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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硏省齋居士의 雜學庫 by 연성재거사|2017/08/12 01:33
우리는 흔히 군주(왕이나 황제)들을 볼 때 명군-암군 구도로 보기 마련이다. 한국사-특히 조선사를 볼 때도 이런 논의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 임금을 통틀어 가장 존경받는 명군을 꼽으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 2..
- 정조에 대한 최근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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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대 헌종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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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밥나무가 있는 별 하나... by 바오밥나무|2013/04/26 10:29
제24대 헌종의 가계도 조선시대의 제24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834∼1849년이다. 1830년(순조 30) 왕세손에 책봉되고, 1834년 순조가 죽자 8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순조의 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였다. 재위기간..
- 제24대 헌종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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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대 순조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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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밥나무가 있는 별 하나... by 바오밥나무|2013/03/29 17:19
제23대 순조의 가계도 조선 제23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800~1834년이다. 정조의 둘째 아들로, 정조가 승하하자, 11세에 즉위하였다. 순조가 어린 탓에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였다. 1801년 대왕대비는 공..
- 제23대 순조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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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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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8/03 07:51
조대비는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 즉 익종(翼宗)의 비다. 일찍이 남편을 잃은 그녀는 왕실 내에서는 가장 웃어른이었다. 그러나 안동 김씨 가문은 순조 대에 이어 철종 대에도 외척으로서 세도를 부려 조대비는 푸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조대비는 안동 김씨 가문에 대..
-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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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의 형 이하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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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8/01 09:22
그런데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대사헌 홍원섭, 대사간 이교인, 지평 신헌구가 연명으로 아뢰었다. 제주목에 안치한 죄인 이하전은 다시 엄중하게 신문해 확실하게 법을 바르게 하십시오. 사실을 알고도 고하지 않은 죄인 이긍선에게는 속히 처자까지 사형시키는 법을 시행하소서.이..
- 흥선대원군의 형 이하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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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의 형 이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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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7/31 06:30
이하응 외에 또 다른 종실인 이하전은 어떤 인물인가. 처음 이하전이 과거에 응시할 때에 늘 힘이 센 자를 많이 모집해 시장에 데리고 들어가 부호 자제들과 자리를 다툰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안동 김씨 세도가의 자제들과 서로 다투다가 크게 낭패를 당하자 이하전은 머리를 풀어헤치..
- 흥선대원군의 형 이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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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안의 파락호 흥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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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7/29 09:04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아버지인 흥선군과 익종비인 조대비의 협력으로 가능했다. 흥선군 이하응의 자는 시백(時伯), 호는 석파(石坡)이다. 그는 영조의 증손인 남연군의 넷째 아들이다. 세간에서는 출세한 이후의 그를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이라 불렀고, 오늘..
- 장안의 파락호 흥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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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왕후(조대비)의 정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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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7/26 09:00
신정왕후는 고종이 즉위하자 1863년 12월부터 1866년 2월 13일까지 수렴청정을 했다. 그리고 익종의 대통을 잇게 하기 위해 고종을 자신의 아들로 삼아 버렸다. 그렇다고 정권이 풍양 조씨 쪽으로 바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신정왕후는 1866년(고종 3) 수렴을 걷은 후 그해 5월 10일 그동안 ..
- 신정왕후(조대비)의 정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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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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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7/25 08:30
조만영의 아들 조병구는 조병현과 함께 풍양 조씨 세도의 중심인물로 부상해 정권을 운영했다. 특히 그는 삼촌인 조인영이 영의정에 오르자 이에 세력을 합해 안동 김씨 세도와 권력을 다투게 되었다. 조득영의 아들 조병현은 1822년 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판서, 형조판서, 대사헌,..
-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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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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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7/24 08:54
풍양 조씨의 본격적인 세도정치는 1819년(순조 19)에 조만영의 딸이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조만영은 이조판서 조진관의 아들이다. 그는 1827년 이조판서 김교근이 병으로 눕자 그 자리에 교체되어 인사권을 거머쥐었다. 이에 순조는 건강상 이유를 들어 세..
-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