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송시열(총 127개의 글)
'송시열' 관련 최근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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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조선회화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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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MVS...DINOSAVRIA by K I T V S|2019/11/24 23:22
(인증 샷과 낙서를 나란히 모음) *개인적으론 처음엔 굉장히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는데 다 읽었을 땐 아쉬운 생각이 더 컸다. 그냥 조선 역사가 비극으로 끝나서 기분 나쁜 트라우마가 떠오른 걸 수도 ..
- <서평> 조선회화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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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11-20 +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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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이글루 by 신기루|2017/10/02 08:55
앞선 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0권은 여기로. 11. 광해군 인내의 아이콘. 세자 16년. 임진왜란 때 분조(분리된 조정)을 이끌고 두각을 나타낸 후로도 10년. 폐위 19년7개월. 재위기간 15년보다 더 긴 세월을 인내속에 살..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11-20 +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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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조선, 마음의 철학 - 이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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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n' music by bonjo|2015/11/12 23:08
이웃 블로거이신 sunjoy님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책을 쓰셨다는 글을 읽고, 책을 소개 안하시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책 제목을 알려달라 했더니 '전공자를 위한 하드코어 학술서라 주변에 권하지 않고 있다..
- 17세기 조선, 마음의 철학 - 이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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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론사관에 대해 간략한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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硏省齋居士의 雜學庫 by 연성재거사|2014/10/21 15:13
ㅇㄷㅇ과 그 Jr.라고 할 수 있는 ㅇㅈㅎ이 밀고 나가는 노론사관. 노론이 조선 후기 집권하면서 역사 왜곡하고 식민사학 수용하고 운운으로 나가는데. 이건 그 안으로 계보를 파고 들어가면 박살나는 헛소리니 여기서는 패스...
- 노론사관에 대해 간략한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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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역사에 대한 파격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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革命デュアリズム by 지나스|2014/07/19 19:21
한복 모에화는 이 정도만 돼도 괜찮은 것 같은데 말이죠. 한복이 기본적으로 색이 곱고 하늘하늘해서 허리라인이 잘 살도록적당히 감아주기만 해도 꽤 괜찮거든요.기생들이 입던 옷은 일단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한복 참 ..
- 우리 역사에 대한 파격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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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종의 환국과 송시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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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핏빛 향기 by 블레이드|2013/06/25 08:17
그리고 그들이 물러난 자리는 남인의 차지가 되었다. 권대운 ․ 목내선 ․ 김덕원이 정승의 자리에 올랐고 민암과 심재 ․ 민종도 ․ 목임일 ․ 유명현 등이 요직에 올랐다. 윤휴를 비롯하여 경신환국에서 화를 당한 많은 사람들이 신원되었다. 원자의 외가 쪽에는 3대에 걸쳐 의정(..
- 숙종의 환국과 송시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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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종의 원자정호와 송시열의 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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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핏빛 향기 by 블레이드|2013/06/18 05:12
숙종은 왕자가 출생한 지 채 석 달도 안 되어 왕자의 명호에 관해 구언했다. 비록 후궁의 소생이라 하더라고 일단 명호를 정하면 원자가 된다. 따라서 그 후에는 설사 왕비가 왕자를 낳더라도 그와 상관없이 명호를 정했던 후궁 소생 왕자가 세자로까지 책봉된다. 이렇듯 대계를 결정하..
- 숙종의 원자정호와 송시열의 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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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종을 무시한 핵심인물은 송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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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핏빛 향기 by 블레이드|2013/04/29 06:43
기해년에도 현종은 송시열의 설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이 전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신들이 이미 국제라고 한데다가 송시열이 사림의 중망을 받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민신 대복 사건에서는 현종뿐만 아니라 평소 송시열을 믿고 존경하던 자들도 대부분 송..
- 현종을 무시한 핵심인물은 송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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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종 말년의 서인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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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핏빛 향기 by 블레이드|2013/04/22 07:44
7월 6일, 조대비의 복제가 잘못 정해졌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상소가 올라왔다. 경상도 대구 유생 도신징(都愼徵)이 상소를 올렸던 것이다. 그는 기해예송 당시의 조대비 복제는 장자복이었고 따라서 인선왕후를 위해서도 장부복(長婦服)인 1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
- 현종 말년의 서인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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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종 때의 예송 - 영남 예소(嶺南禮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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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12/03 06:31
기해예송이 기년복으로 귀결되자 남인의 3년설과의 논란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1666년(현종 7)으로 접어들면서 예송은 새로운 국면으로 진전되었다. 유세철을 소두로 1천여 명의 영남 남인들이 연명한 영남 유소와 이조정랑 김수홍의 예설이 다시금 정계에 큰 파란을..
- 현종 때의 예송 - 영남 예소(嶺南禮疏)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