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유화정책(총 202개의 글)
'유화정책' 관련 최근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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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캐넌,"소련의 위협은 나치 독일과 어떻게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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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7/02/03 13:40
키신저의 경고. 냉전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은 1946년 2월 22일, 소련 주재 대리 대사 조지 케넌, 긴 전보 발송이었다. 이 전보를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미국의 봉쇄정책이다. 봉쇄정책은 소련에 대한 예방전쟁과..
- 조지 캐넌,"소련의 위협은 나치 독일과 어떻게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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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신저, 데탕트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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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12/28 16:59
키신저의 경고. 키신저는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우리는 긴장 완화를 소련에 대한 양보로 간주하지 않았다. 데탕트에 대한 우리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국익의 관점에서 그것을 재정의 하려고 단지 노력했을 뿐이다. 데탕트는..
- 키신저, 데탕트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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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유화정책과 데탕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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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12/14 05:03
트럼프,"테러범을 고문하지 않겠다!" 트럼프가 틸러슨을 차기 미국 국무장관에 임명했다고 한다. 석유 재벌이자, 러시아 푸틴의 친구인 틸러슨이 국무장관이 되면서, 트럼프 시대의 미러관계가 오바마 시대의 냉전 청산을 도모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트럼프의 ..
- [트럼프]유화정책과 데탕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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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신저, "민주주의가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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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12/12 11:55
키신저의 경고. 민주주의가 평화를 담보한다는 주장이 있다. 즉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에서의 민주화가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의 영구평화론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키신저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평화 보다는 갈등을 보다 심각한 것으로 만들 수..
- 키신저, "민주주의가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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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6년, 히틀러는 여전히 정상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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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10/07 16:43
독일의 라인란트 재점령-1936년 3월 7일 <라인란트> 1936년 3월 7일, 히틀러의 독일이 라인란트를 재점령했다. 라인란트 재점령을 통해서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과 로카르노 조약을 동시에 위반하면서, 라..
- "1936년, 히틀러는 여전히 정상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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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를 막는 것은 왜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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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10/03 00:03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하나 혹은 하나 이상의 경쟁,적대 세력에 대한 외교정책 수립의 문제에서 그 세력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성격에는 제국주의와 현상유지 세력이 있다. 히틀러의 경우, 1933-1938년 뮌헨회담까지 현상유지 세력으로 간주될 여..
- "히틀러를 막는 것은 왜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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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화정책이 정당한 경우는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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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10/02 20:27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한스 모겐소는 국가간의 정치에서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역사적 대참사였지만, 그렇다고 유화정책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유화정책의 옳고 그름을 평가..
- "유화정책이 정당한 경우는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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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신저,"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비난하기는 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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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09/27 15:00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히틀러 독일의 군사 강대국으로의 부상에 대해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재무장이 진행되도록 방치했던 것은 문자 그대로, 그들은 달리 어떻게 할지 몰랐기 때문..
- 키신저,"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비난하기는 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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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테르니히, 혁명세력과의 평화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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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09/06 14:00
메테르니히,100년의 유럽 평화를 설계하다! 키신저의 박사논문에 따르면, 메테르니히의 선견지명이란 프랑스가 혁명세력임을 분명히 했고, 혁명세력과는 어떠한 평화도 가능하지 않다는 원칙을 일찌기 견지했다는 점에 있었다. ; 그러나 메테르니히가 18세기 귀족으로서 얼마나 전..
- 메테르니히, 혁명세력과의 평화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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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일러,"히틀러의 외교정책은 잘못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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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03/30 12:10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 영국 역사가 테일러의 제2차세계대전의 기원은 이 전쟁의 기원에 대한 모든 진지한 연구가 출발해야 할 학문적 업적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은 히틀러에 대해서 알려주..
- 테일러,"히틀러의 외교정책은 잘못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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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후 영국 현실주의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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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03/30 11:29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 1930년대의 유럽 현실주의 이안 홀에 따르면, 1940년대와 1950년대 영국 현실주의는 30년대의 과오 때문에 시련을 맞이했다고 한다. 1940년대와 1950년대 현실주의는 전체주의와의 관계 그리고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지지한 전력 때문에..
- 전후 영국 현실주의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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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포퍼, 현실주의의 문제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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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03/28 11:27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 현실주의의 한계란 무엇인가? 조지 오웰의 비판처럼, 현실주의가 불쾌한 현실을 수동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패배주의로 귀결될 수도 있다.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다시말해 마키아벨리의 현실..
- 칼 포퍼, 현실주의의 문제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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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벌린과 루이스 네이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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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03/25 03:55
구글 지식의 한계? 루이스 네이미어 루이스 네이미어는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다보면 자주 언급되는 영국의 역사가이다. 이사야 벌린 평전을 읽다가, 벌린과 루이스 네이미어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는 대목을 발견했다. 1930년대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올소울즈 칼리지는 존..
- 이사야 벌린과 루이스 네이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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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인스와 영국의 유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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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03/19 08:42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 [유화정책][케인스] "케인스도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을 지지했을까?" 영국의 유화정책 지지자들은 베르사유가 독일을 너무 가혹하게 처벌했기 때문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더불어 명백했던 것은 독일이 ..
- 케인스와 영국의 유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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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H.카, 뮌헨협정에 대해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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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6/03/18 09:31
"E.H. 카는 대독 유화론자 였다!" E.H. 카가 20년의 위기에서 개진한 다음 주장은, 유화정책을 지지하는 현실주의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 즉 후발세력의 요구를 기득권 세력이 양보를 통해 타협하면서, 국제문제를 전쟁없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 E.H.카, 뮌헨협정에 대해서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