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풍양조씨(총 13개의 글)
'풍양조씨' 관련 최근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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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왕후(조대비)의 정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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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7/26 09:00
신정왕후는 고종이 즉위하자 1863년 12월부터 1866년 2월 13일까지 수렴청정을 했다. 그리고 익종의 대통을 잇게 하기 위해 고종을 자신의 아들로 삼아 버렸다. 그렇다고 정권이 풍양 조씨 쪽으로 바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신정왕후는 1866년(고종 3) 수렴을 걷은 후 그해 5월 10일 그동안 ..
- 신정왕후(조대비)의 정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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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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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7/25 08:30
조만영의 아들 조병구는 조병현과 함께 풍양 조씨 세도의 중심인물로 부상해 정권을 운영했다. 특히 그는 삼촌인 조인영이 영의정에 오르자 이에 세력을 합해 안동 김씨 세도와 권력을 다투게 되었다. 조득영의 아들 조병현은 1822년 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판서, 형조판서, 대사헌,..
-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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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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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7/24 08:54
풍양 조씨의 본격적인 세도정치는 1819년(순조 19)에 조만영의 딸이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조만영은 이조판서 조진관의 아들이다. 그는 1827년 이조판서 김교근이 병으로 눕자 그 자리에 교체되어 인사권을 거머쥐었다. 이에 순조는 건강상 이유를 들어 세..
-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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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김씨 내부의 싸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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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7/14 09:44
한편 1762년 사도세자가 화를 당할 때 김관주의 아버지 김한록이 대의를 위해서는 친함도 저버릴 수 있다는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문자인 대의멸친(大義滅親)의 설로써 영조에게 아뢰자 부제학 김시찬(金時粲)이 이를 꺾었던 적이 있었다. 김시찬은 김상용의 현손으로 자는 치..
- 안동김씨 내부의 싸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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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종 즉위의 변칙, 기유예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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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7/07 08:46
이 예론에는 안동 김씨에서는 좌의정 김흥근이 대표적 이론가로 참여했다. 당시 대유학자 홍직필도 마땅히 진종의 신주도 종묘에서 내가야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철종과 헌종이 친속의 호칭으로는 숙질로 부르고 있지만 왕가에서는 왕위의 대통을 잇는 것을 중시하므로 헌종과 철종..
- 철종 즉위의 변칙, 기유예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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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종으로의 왕위 계승의 변칙, 기유예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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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 by 블레이드|2012/07/02 09:21
그런데 재야 유학자 홍직필은 안동 김씨 편에 서서 철종의 왕위 계승에 확고한 이론을 제공했다. 그는 안동 김씨로부터 그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 중에 똑똑한 제자가 있으면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정실에 따라 세도가 김병기의 형 김병준을 추천했다. 그 때문에 홍직필 문하의 우..
- 철종으로의 왕위 계승의 변칙, 기유예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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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권 - 헌종, 철종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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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 by 눈시|2011/11/23 16:40
그의 책에는 언제나 빠지지 않는 물음이 있다. 교과서나 일반 교양 역사서에 나오는 상식, 이모씨 등이 퍼뜨리는 자극적이고 절대악을 만드는 주장 등에 대한 물음이다. 그 대상이 어떻든 그는 거침 없이 질문을 던지고 스..
박시백, 박시백의조선왕조실록, 박시백화백, 헌종, 철종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권 - 헌종, 철종 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