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1941년(총 10개의 글)
'1941년' 관련 최근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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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년]해군 차관의 변명,왜 반대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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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9/03/22 13:21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41년 10월, 일본의 국운이 달린 결정과정에서 해군성이 반대의사를 주장하지 못했다. 스스로 미국과의 전쟁 승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해군성 차관 사와모토는 후에 이렇게 변명했다. "아주 오랫동안 해군은 스스로..
- [41년]해군 차관의 변명,왜 반대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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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년 일본을 위한 하나의 이론적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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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9/03/22 10:15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전쟁이냐 평화냐는 중요한 문제를 10명의 집단이 결정한다고 가정하자. 10명은 모두 국가 최고의 엘리트 과정을 경험했다. 유년 시절부터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그들은 개개인으로 모두 합리적으로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다. 하지만, 집단으로..
- 41년 일본을 위한 하나의 이론적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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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년]미일 협상에 대한 장개석과 처칠의 초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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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8/10/02 11:39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41년 미국과 일본의 협상에 대한 장개석과 처칠의 인식은 무엇이었나? 1941년 2월에 시작된, 미국 국무장관 헐과 주미 일본대사 노무라 기치사부로의 미일 협상에 대해서, ..
- [41년]미일 협상에 대한 장개석과 처칠의 초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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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의 과업(課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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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디안의 휴식처 by 에드워디안|2012/12/24 04:18
1789년 이래, 대통령취임식 때마다 국민들은 합중국에 대한 '헌신의 생각'을 새로이 가다듬어 왔습니다. 조지 워싱턴의 시대, 국민의 과업은 단합된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링컨의 시대, 국민의 과업은 국가를 내..
- 이 시대의 과업(課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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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전반기 미국의 대일정책 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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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1/09/20 09:24
제2차세계대전 개전과 일본 이리에 아키라의 지적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941년 전반기 미국의 정책은 아직도 철저한 일본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지 않고 있었다. 미국은 근본적인 방침, 즉 영국과 식민지 방위에는 변함이 없지만,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양면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자..
- 1941년 전반기 미국의 대일정책 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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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탱,"프랑스인들여, 당신들은 정말 기억력이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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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1/08/22 18:12
페탱 원수,"전투를 끝내지 않으면 안된다" 필립 페탱의 대국민연설 1941년 6월 17일 "프랑스인들여, 당신들은 정말 기억력이 나쁘다!" - 1940년 6월 17일, 페탱의 "전투를 끝내지 않으면 안된다"선언 1주년을 맞아, 페탱이 발표한 기념연설이다..
- 페탱,"프랑스인들여, 당신들은 정말 기억력이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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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기준 京義線 ・ 安奉線 ・ 滿鐵線의 驛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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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디안의 휴식처 by 에드워디안|2010/11/05 16:04
경의선(京義線) 경성(京城)-신촌(新村)-수색(水色)-능곡(陵谷)-일산(一山)-금촌(金村)-문산(汶山)-임진강(臨津江)-장단(長湍)-봉동(鳳東)-개성(開城)-토성(土城)-여현(礪峴)-계정(鷄井)-금교(金郊)-한포(汗浦)-평산(平山..
- 1941년 기준 京義線 ・ 安奉線 ・ 滿鐵線의 驛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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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對美개전에 대한 한 남자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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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디안의 휴식처 by 에드워디안|2010/10/28 18:25
"도조(東條) 내각에서도. 어떻게든 끝까지 對美개전을 피하려 노력했으나, 헐 노트가 충격이었다. 우리 문관들에게는 발언권이 없었기 때문에 군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대부분 각료들이 생각했다. 걸출한 위인이라면 몰라도 일반인에게는 군부를 억제할 힘이 없었다...
- 對美개전에 대한 한 남자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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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식 인간성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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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13구님의 이글루 by 파리13구|2010/09/12 18:47
1941년 7월, 독소전쟁이 이미 시작되었고, 소련 영토로의 독일군 진격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문제는 식량확보였고, 이같은 식량위기는 동부전선의 문제만이 아니라, 폴란드의 로츠 게토 에서도 마찬가지 였다고 한다. 당시 게토의 친위대 롤프-하인츠 호프너가 자신의..
- 나치식 인간성이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