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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글루스 '고다르' 태그 최근글</title>
		<link>http://valley.egloos.com/tag/고다르</link>
		<description>고다르</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24 Apr 2012 23:27:3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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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Nouvelle Vargu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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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ouvelle Vargue     - 실존주의적 이념   - 예술을 모방하는 영화 지향   - '새로운 어떤 것' → 이미지가 말한다, 현재 진행형, 자가목적성, 임의성, 자발성   - 이야기구조 : 정형성 ↓, 무정부적 이데올로기 (무질서, 무계획, 자의성), 열린구조의 결말      감정에 따른 시공간성 (사건중심 X), 서술적인 이야기 전개 (극적 전개 X)     - 저예산 제작 (16mm Camera)   - 동시녹음   - 영화의 개인화, 일반화 실현   - 빠른 몽타쥬 (빠른 이야기 전개)   - 즉흥적 미장센 (야외촬영, 즉흥연기, 자연조명)   - 촬영 (Zoom In / Out, Stop Motion, Long Pan, 무성영화적 기법 - Iris, Inter-Titl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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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4 Apr 2012 23:27:36 +0900</pubDate>
	<dc:creator><![CDATA[Hasta Luego]]></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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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lt;필름 소셜리즘&gt;에 대한 메모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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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100x76/http://pds18.egloos.com/pds/201108/29/78/a0021078_4e5b6f83e4186.jpg"  
				alt="&lt;필름 소셜리즘&gt;에 대한 메모1" 
				width="10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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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ign="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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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낮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오다가 든 생각. &amp;lt;필름 소셜리즘&amp;gt;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 영화의 의의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quot;영화의 역사(들)&quot;에 내재됐던 쟁점을 점화시켰다는 점을 높이 사고싶다. 우선 이 영화에는 '영화를 보는 것'에 있어서 변증법인 사유과정과 역사유물론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둘째. 이데올로기라는 대상이 스크린 위에 어떻게 투사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흔히 그것이 오직 '서사'로서만 투사된다고 생각해왔다. 혹은 테크놀로지에 의해 '오직' 매끄럽게 구현된 이미지에 의해. 그러나 고다르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충돌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할 때 이미지와 충돌할 수 있는 '사운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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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9 Aug 2011 17:21:38 +0900</pubDate>
	<dc:creator><![CDATA[바지를 입은 구름]]></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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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고다르 Film Socialisme - 이미지, 영화, 윤리 그리고 유럽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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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2010년 칸느 영화제에 등장한 고다르의 신작인 필름 소시알리즘 (고다르는 이 영화의 제목을 그냥 소시알리즘이 아니라 필름 소시알리즘으로 언급하기를 강조한다)은 그의 Notre musique의 확장판과 같다. 그리고 좀 더 내러티브를 분해하면서, 다큐멘타리라고도 부를수 없고, 단지 극장판 비디오 아트라고만으로도 부를수 없는 말그대로 고다르적 영화라고 불릴만 하다.  고다르는 마치 영화사의 헤겔이 되려는 듯한 느낌도 우리들에게 준다. 그의 영화의 역사(들)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단지 한명의 영화감독으로서가 아니라 그 영화의 역사를 그 이미지들의 역사를 계속 사유하고 정리해 나감으로서, 영화가 무엇인지 계속 정의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브레송과 고다르가 달라지는 지점이다. 브레송이 시네마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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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1 Jul 2011 10:55:59 +0900</pubDate>
	<dc:creator><![CDATA[SARABAND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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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시오니즘] 천재 감독의 반유대주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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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100x76/http://pds20.egloos.com/pds/201011/11/73/e0022573_4cdb44cfba059.jpg"  
				alt="[시오니즘] 천재 감독의 반유대주의!" 
				width="100px"  
				height="76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시오니즘 과 반유대주의...    [미국][영화]  장 뤽-고다르는 반유대주의자 천재감독인가? 미국 - &amp;lt;유대 저널&amp;gt; 보도... &quot;헐리우드가 장-뤽 고다르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한다는 소식이 불편한 질문들을 피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quot;라고 지난 10월 8일, 미국 &amp;lt;유대 저널&amp;gt;가 문제제기 했다. 이 미국 LA의 유대인 잡지는 이런 바보같은 질문들을 자주 제기하는 편이다. 가령 지난 1월, 이 잡지는 1면에, 코엔 형제의 영화 &amp;lt;시리어스 맨&amp;gt; 과 여성감독, 론 셰피그 감독의 &amp;lt;언 에듀케이션&amp;gt;이 슬프게도 나치 선전선동을 연상시킨다고 비난한 바 있다.	]]>
	</description>
	<pubDate>Thu, 11 Nov 2010 10:35:56 +0900</pubDate>
	<dc:creator><![CDATA[파리13구님의 이글루]]></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시오니즘 과 반유대주의...]]></title>
	<link>http://kk1234ang.egloos.com/2676716</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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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가령, 한 한국사람이 한국을 비판한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그를 &amp;lt;반한국주의자&amp;gt; 혹은 &amp;lt;혐한론자&amp;gt;라 비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경우,  극단적인 시오니스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은 &amp;lt;반유대주의&amp;gt;인 모양이다.  특히, 유대인은 절대로 이스라엘을 비판해서는 안되는 모양이다.   시오니즘적 논리의 극단성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프랑스 영화감독, 장-뤽 고다르의 반유대주의 논란을 보면,  시오니즘, 반유대주의 논리가 천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도에 따르면,  고다르 가 할리우드가 주는 평생공로상 수상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문제가 불투명해 지자,  그 이유에 대한 각종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이에 시오니스트 단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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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1 Nov 2010 10:08:56 +0900</pubDate>
	<dc:creator><![CDATA[파리13구님의 이글루]]></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제6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본 11편의 영화들-2]]></title>
	<link>http://myungworry.egloos.com/5321382</link>
	<guid>http://myungworry.egloos.com/5321382</guid>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100x76/http://pds19.egloos.com/pds/201005/22/01/c0076901_4bf72403b4aa0.jpg"  
				alt="제6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본 11편의 영화들-2" 
				width="100px"  
				height="76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amp;lt;아웃레이지&amp;gt;는 기타노 다케시가 &amp;lt;브라더&amp;gt; 이후 10년만에 만든 야쿠자 영화라고 한다. 더하고 뺄 것 없는 정말 야쿠자 영화다. 너무 전형적인 야쿠자 영화라서 보고나면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quot;빠가야로! 탕&quot; &quot;빠가야로! (손가락 자르기)&quot;가 이어진다. 시나리오 쓸 떄부터 사람을 어떻게 죽일지 연구한다”고 다케시는 농담처럼 말했는데, 그렇게 독창적인 살해 수법은 아니다. 오히려 뿌리 조직과 그 아래의 수많은 계파 조직이 얽키고 설켜서 서로 음모를 꾸미고 총질을 해대는 모습이 재미있다. 하긴 이런 것도 지금까지 야쿠자 영화에서 다 했던 것이다. 다케시는 &amp;lt;다케시즈&amp;gt;같이 예술가의 자의식을 드러냈던 영화들에서 벗어나, 매우 상업적인 장르 영화로 돌아왔다. 때문인지 평점은 최악에 가	]]>
	</description>
	<pubDate>Sat, 22 May 2010 09:27:05 +0900</pubDate>
	<dc:creator><![CDATA[明月館]]></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lt;누명 쓴 사나이&gt; 공포의 작동 기제; 환영으로서의 서스펜스 ]]></title>
	<link>http://o2o0o2o.egloos.com/156015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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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고다르가 &amp;lt;&amp;lt;카이에 뒤 시네마&amp;gt;&amp;gt;에 쓴 글  스토크 클럽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뉴욕에서 가장 세련된 만남의 장소이다. 에어컨, 자욱한 시가 연기, 선명한 립스틱... 그러나 크레딧 너머로 차츰 비어가는 실내에 자리한 카메라는 그곳의 스타나 백만장자를 보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노곤한 블루스를 연주하는 평범한 작은 악단 쪽으로 다가간다. 스토크 클럽은 문을 닫고, 크리스토퍼 발레스테로(헨리 폰다)는 연주를 마치고 더블 베이스를 챙겨 도어맨에게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선다. 이 때 화면의 앵글 때문에, 잠시 두 형사가 그를 따라오는 것처럼 보인다. 잠시. 그러나 다음 순간 형사들은 그의 옆을 지나쳐 앞서 가기 시작한다. 이 쇼트로 히치콕은 발레스트레로를 기다리고 있는 구속과 더불어 앞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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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8 Mar 2008 17:21:17 +0900</pubDate>
	<dc:creator><![CDATA[I&amp;amp;my galaxy]]></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몽타주, 나의 아름다운 근심거리]]></title>
	<link>http://o2o0o2o.egloos.com/153595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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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 이 글은 고다르가 26살 때 집필한 것으로, 1956년 12월에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제65호)를 통해 발표되었다. 영화 감독이 되기 전 비평가 고다르가 발표한 글 가운데 「고전적 데쿠파주의 옹호와 예증」등과 더불어 중요하게 간주되는 것 가운데 하나로, 여기서 그는 몽타주에 대한 미장센의 우위라는 바쟁식의 사유를 재검토하며, 이 둘 간의 상호의존적인 특성을 강조한다. (괄호 안의 내용과 주는 역자가 덧붙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영화)을 편집실에서 구원할 것이다.” 제임스 크루즈, 그리피스, 스트로하임에게 잘 어울리던 이 금언(金言)은 무르나우나 채플린에게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으며, 모든 유성영화들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을만큼 그릇된 것이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amp;lt;1	]]>
	</description>
	<pubDate>Thu, 20 Mar 2008 19:02:46 +0900</pubDate>
	<dc:creator><![CDATA[I&amp;amp;my galaxy]]></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몽타주, 나의 아름다운 근심거리]]></title>
	<link>http://chassang.egloos.com/400483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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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quot;우리는 그것(영화)을 편집실에서 구원할 것이다.&quot; 제임스 크루즈, 그리피스, 스트로하임에게 잘 어울리던 이 금언은 무르나우나 채플린에게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으며, 모든 유성영화들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그릇된 것이 되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amp;lt;10월 October&amp;gt; - 그리고 무엇보다 &amp;lt;멕시코 만세! Que Viva Mexico!&amp;gt; - 과 같은 영화에서, 몽타주는 무엇보다도 미장센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오직 위험을 감수할 때만이, 하나를 다른 하나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다. 이는 누군가가 리듬을 멜로디에서 분리하려 시도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다. &amp;lt;엘레나와 남자들&amp;gt;과 &amp;lt;아카딘 씨&amp;gt; 는 모두 몽타주의 모델들인데, 왜냐하면 각각의 영화가	]]>
	</description>
	<pubDate>Thu, 13 Dec 2007 13:26:27 +0900</pubDate>
	<dc:creator><![CDATA[noox]]></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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