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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글루스 '러시아혁명' 태그 최근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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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러시아혁명</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20 Apr 2012 21:28: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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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나보코프의 처녀작 &lt;마리&g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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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76x100/http://pds21.egloos.com/pds/201204/20/07/c0148807_4f915656c82db.jpg"  
				alt="나보코프의 처녀작 &lt;마리&gt;" 
				width="76px"  
				height="100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역량이 집약된 작품들을 뽑으라고 한다면, 대개 &amp;lt;롤리타&amp;gt;, &amp;lt;창백한 불꽃&amp;gt;, &amp;lt;아다&amp;gt; 정도가 언급될 것입니다.   어느 한 작가를 덕질할 때, 초기작부터 읽지 않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짓입니다.   대표작이자 최고작품부터 읽고, 초기작을 읽으면, 퀄리티의 차이 때문에 상당히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이미 대부분의 나보코프의 작품을 읽고 난 후, 나보코프의 데뷔작 &amp;lt;마리&amp;gt;를 읽는 것은 상당히 모험이었습니다.  결과는 그래도 다행, 이라고 표현하고 싶군요.  나보코프는 참으로 여러모로 특이한 작가입니다. 러시아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작품들을 썼으며, 이 각각의 서로 다른 언어권에서 모두 작가적으로 성공을 거두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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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0 Apr 2012 21:28:35 +0900</pubDate>
	<dc:creator><![CDATA[JHALOFFS WAKE]]></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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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quot;러시아와 제1차세계대전의 기원&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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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100x76/http://pds24.egloos.com/pds/201203/25/73/e0022573_4f6e6e9cd6f43.jpg"  
				alt="&quot;러시아와 제1차세계대전의 기원&quot;" 
				width="100px"  
				height="76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자료]사이크스-피코 협정,1916년   [제1차 세계대전] &quot;러시아와 제1차세계대전&quot; - &quot;제1차세계대전을 도발한 것은 러시아고,프랑스는 이를 적극적으로 도왔고, 영국은 속아서 전쟁에 참여했다?&quot; 최근에, 역사가 션 맥미킨 Sean McMeekin이 제1차세계대전의 러시아적 기원 The Russian Origins of the First World War 을 출간했다. 관련 서평을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제1차세계대전은 누구 책임인가? 기존의 지배적 견해에 따르자면, 독일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션 맥미킨은 다른 범인을 지목하고 있고, 그것은 바로 러시아다. 그의 주장은 소련 해체 이후 공개된, 러시아 제국 문서보관서 관련 문서 연구에 근거하고 있다. 통설에 따르면, 장래의 전쟁에서 프랑스,러시아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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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5 Mar 2012 10:06:28 +0900</pubDate>
	<dc:creator><![CDATA[파리13구님의 이글루]]></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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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quot;이슬람주의와 볼셰비즘 ?&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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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quot;주권이 신으로부터 온다고 믿는 이슬람주의!&quot;  재스민 혁명 초기까지만 해도, 튀니지,이집트에서 독재를 타도한 것은 일반 시민이고, 독재와 타협했던 이슬람주의 정치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혁명이후 민주주의를 시작한 중동 국가들에서 현재 이슬람주의의 바람이 거세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역시 조직의 문제라 본다.  서구 언론의 시각에서, 아랍의 봄의 특징은 장기 독재에 염증을 느낀, 조직도 이념도 없는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가능했던 혁명이다.  하지만, 문제는 독재를 타도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권력의 공백으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는 점에 있다.  독재자 몰락 이후, 벤 알리와 무바라크를 타도하는데 주역이었던 일반 시민들의 문제는 바로 그들이 조직	]]>
	</description>
	<pubDate>Mon, 12 Dec 2011 09:49:40 +0900</pubDate>
	<dc:creator><![CDATA[파리13구님의 이글루]]></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11월 7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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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100x76/http://pds22.egloos.com/pds/201111/07/37/a0100237_4eb74441dba71.jpg"  
				alt="11월 7일" 
				width="100px"  
				height="76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러시아 10월 혁명이 일어나다 (1917년 11월 7일) 러시아에서는 1917년에 두 차례 혁명이 일어났는데, ‘2월혁명’과 ‘10월혁명’이다. 1917년  2월 혁명 이후 러시아는 지주-부르조아들의 임시정부와 노동자-병사들의 소비에트로 대립하고 있었으며, 망명중인 레닌은 스위스로부터 독일이 제공한 봉인열차편으로 귀국한 뒤 ‘자본주의의 타도 없이 종전은 불가능하다’는 등 10개항에 걸친 4월 테제(April Theses)를 발표하였다. 이것이 볼셰비키의 방침이 되어 ‘임정타도’,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임시정부에 대항하게 되었다. 결국 레닌의 강력한 요청으로 볼셰비키 당내에서는 봉기의 방침이 결정되었다. 11월 6일, 임시정부 수상 케렌스키가 볼셰비키 신문 인쇄소를 봉쇄하자 트로츠키는 	]]>
	</description>
	<pubDate>Mon, 07 Nov 2011 11:14:26 +0900</pubDate>
	<dc:creator><![CDATA[바오밥나무가 있는 별 하나...]]></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소련 붕괴 20주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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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76x100/http://pds22.egloos.com/pds/201110/20/73/e0022573_4e9ff7acc53a9.jpg"  
				alt="소련 붕괴 20주년..." 
				width="76px"  
				height="100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프랑스 월간 &amp;lt;역사&amp;gt; 11월호의 제목은 &amp;lt;소련 최후의 날들&amp;gt;이다.  [소련] [소련 붕괴 20주년] 1991년 12월 8일, 소련이 사라지고 독립국가연합이 탄생했던 것이다. 이렇게 소련이 붕괴된지 20년이 지났다.  프랑스 파리 -월간 &amp;lt;역사&amp;gt; 사설2011년 11월호 태양이 동쪽에서 잠들다. 두개의 혁명들이 20세기를 근본적으로 대표했다 : 소련의 탄생을 본 혁명과 그 죽음을 본 혁명! 10월혁명이 제1차세계대전이 한창인 가운데 새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 서양인들은 더 좋은 세상을 꿈꾸었고, 화해와 보편적 형제애가 있는 사회를 원했고, 그들에게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랐던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잿더미와 묘지 위로, 공산주의가 역사상 처음으로 &amp;lt;찬란한 미래&amp;gt;로	]]>
	</description>
	<pubDate>Thu, 20 Oct 2011 19:30:43 +0900</pubDate>
	<dc:creator><![CDATA[파리13구님의 이글루]]></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제1차세계대전과 일본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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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제1차세계대전과 일본 (1)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가자, 상황은 일본의 대륙팽창정책 촉진에 보다 더 유리하게 되었다. 미국이 1917년 참전했고, 러시아혁명이 같은 해 폭발했다. 종전 이후 서구 열강이 아시아로 돌아올 것이라 전망한, 많은 일본 지도자들은 가능한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1918년 여름, 독일이 항복하기 몇달 전, 데라우치 정권은 러시아혁명에 대한 연합 개입군의 일환으로, 시베리아에 7만명의 군을 파병했다. 의미심장하게도, 일본은 연합군의 주력을 담당했고, 심지어 다른 연합국가들이 시베리아에서 철군한 이후에도, 가장 오랫동안 그곳에 주둔했다. 데라우치 내각은 또한 러시아 혁명이 극동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위해, 중국과 공동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일본군은 중	]]>
	</description>
	<pubDate>Mon, 05 Sep 2011 08:50:31 +0900</pubDate>
	<dc:creator><![CDATA[파리13구님의 이글루]]></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lt;고요한 돈강&gt;과 &lt;닥터 지바고&gt;관련 잡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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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76x100/http://pds18.egloos.com/pds/201106/26/62/a0022162_4e06de993f0ef.jpg"  
				alt="&lt;고요한 돈강&gt;과 &lt;닥터 지바고&gt;관련 잡설" 
				width="76px"  
				height="100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숄로호프의 &amp;lt;고요한 돈강&amp;gt;과 빠스쪠르낙의 &amp;lt;닥터 지바고&amp;gt;는 러시아 혁명을 소재로 한 문학들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상당히 미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작품들이지요.  사실 두 작품은 '러시아 혁명과 적백내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휩쓸리는 개인의 삶'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둘다 노벨문학상에 올라갔다는 점도 같지요. 그런데 &amp;lt;고요한 돈강&amp;gt;은 (비판도 받았지만)본국의 인정을 받았고, &amp;lt;닥터 지바고&amp;gt;는 거부당했습니다. 빠스쪠르낙은 노벨상 수상도 거부해야 했고 말이지요.  더욱이 숄로호프는 아이러니하게도 스딸린의 적극적인 옹호를 받았습니다. 반면에 빠스쪠르낙은 스딸린이 죽고 좀 더 자유로워진 것 같았던 흐루시쵸프 시대에 &amp;	]]>
	</description>
	<pubDate>Sun, 26 Jun 2011 17:07:15 +0900</pubDate>
	<dc:creator><![CDATA[스노우 씨의 거주지]]></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혁명에서의 인도주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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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혁명에서는 최고의 활력에서 최고의 인도주의를 찾을 수 있다. 라브로프는 이를 적절히 표현했다. &quot;사람의 목숨과 피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만이 신속하고 결정적인 승리의 가능성을 끌어내고 최대한의 속도와 활력을 동원하여 적을 분쇄할 수 있다. 혁명에 따르게 마련인 희생과 인명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은 이것 뿐이다.&quot;  ...  카우츠키는 혁명의 원동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시시각각 바뀌는 분위기의 내적 한계를 깨닫지도 못했다. 따라서 그는 생명이 없는 틀로 생각하며 자의적으로 선택한 유사성을 들어 사건의 전망을 왜곡한다. 그는 혁명 초창기에 대중의 일반적 특징이 바로 우유부단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공세를 취하는 것은 강철의 필연성이 가하는 압박에 시달릴 때 뿐이다. 백위대가 위협할 때만	]]>
	</description>
	<pubDate>Thu, 12 May 2011 22:25:59 +0900</pubDate>
	<dc:creator><![CDATA[眞革]]></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전간기의 자유민주주의...(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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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베르사유 체제는 유럽전역에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amp;lt;의회제&amp;gt;의 시작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러시아 혁명 과 공산주의의 망령이 유럽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자, 많은 국가의 지도자들은 반공이 최우선이었고, 민주주의는 그 다음이었고, 이렇게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점차적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특히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 점차 우경화되어 갔다. 당시 스페인의 한 비평가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 &quot;만약 누군가가 현재 유럽에 나타나고 있는 독재의 문제점들을 관찰하게 된다면, 독재 체제들이 새로 세워지거나, 기존 독재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오히려 안도감을 느낀다는 놀라운 사	]]>
	</description>
	<pubDate>Mon, 21 Mar 2011 14:17:21 +0900</pubDate>
	<dc:creator><![CDATA[파리13구님의 이글루]]></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자료]영화를 통해 본 혁명의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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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100x76/http://pds20.egloos.com/pds/201103/17/73/e0022573_4d8151ddb39a6.jpg"  
				alt="[자료]영화를 통해 본 혁명의 역사..." 
				width="100px"  
				height="76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혁명을 다룬 영화 및 다큐들이 어떤 것이 있을까 알아보다가 다음 목록을 간단히 만들어 보았다.  작품선정을 위해, 프랑스 역사가 마르크 페로의 책을 참고했고,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미국혁명 과 프랑스혁명, 그리고 러시아혁명 만을 다루었다.  우선, 미국혁명을 다룬 작품이 단 한편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내가 한 검색의 부실탓도 있지만, 실제로도 미국혁명을 다룬 영화들이 드물다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세계영화 종주국이자 꿈의 공장인 헐리우드가 있는 미국의 혁명이 영화적으로 외면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20세기 미국인들이 혁명현상 일반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 혐오가 자신의 미국혁명에 까지 적용된 결과라고 한다.   프랑스혁명 관련 영화의 역사에서도, 프랑스혁명과 자코뱅주의를	]]>
	</description>
	<pubDate>Thu, 17 Mar 2011 13:41:50 +0900</pubDate>
	<dc:creator><![CDATA[파리13구님의 이글루]]></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스탈린의 혁명적 공리주의? ]]></title>
	<link>http://kk1234ang.egloos.com/2700729</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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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quot;51%를 구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혁명을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49%를 희생시키겠다.&quot;   - 스탈린   러시아 내전기 볼가 시 공방전 때...   - 스탈린이 일관되게 추구한 것은 러시아 혁명이 살아남도록 하는 것과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지켜내는 것이었고,  그는 이것이 좋은 것이고, 올바른 것이라 보았고,  소련에게 이익일 뿐만아니라, 전세계 피압박 민중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혁명적 공리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보면,  소련 공산주의의 공리에 방해되는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혁명을 위해서라면, 반혁명 분자들의 숙청이 불가피하다는 논리 였다고 본다.	]]>
	</description>
	<pubDate>Wed, 05 Jan 2011 15:19:57 +0900</pubDate>
	<dc:creator><![CDATA[파리13구님의 이글루]]></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레닌의 유언장,1922년 12월 25일...]]></title>
	<link>http://kk1234ang.egloos.com/2699841</link>
	<guid>http://kk1234ang.egloos.com/2699841</guid>
	<description>
	<![CDATA[ 
&quot;스탈린 동지는 서기장이 되면서 자기 수중에 무한한 권력을 집중했는데, 나는 그가 이 권력을 늘 적절히 신중하게 사용할 거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한편 트로츠키 동지는 교통통신 인민위원부 와 관련해서 중앙위원회와 벌인 투쟁에서 보여주었듯이 그저 뛰어난 재능으로만 돋보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개인적으로 현재 중앙위원회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고 순수하게 행정적인 측면에만 지나치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탈린은 너무 거칩니다. 이런 결함은 우리 안이나 우리 관계에서는 충분히 참을 수 있지만, 서기장이라는 자리에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는 동지들에게 스탈린을 물러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임명하는 방안을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보다 참	]]>
	</description>
	<pubDate>Mon, 03 Jan 2011 14:26:33 +0900</pubDate>
	<dc:creator><![CDATA[파리13구님의 이글루]]></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레닌이라 쓰고 혁명이라 읽기]]></title>
	<link>http://multitude.egloos.com/1724923</link>
	<guid>http://multitude.egloos.com/1724923</guid>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76x100/http://pds20.egloos.com/pds/201006/12/19/f0041119_4c1355030da20.jpg"  
				alt="레닌이라 쓰고 혁명이라 읽기" 
				width="76px"  
				height="100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혁명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일어난다. 한 천재적인 수완을 가진 개인이나 음모적인 비밀결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혁명은 없다. 그것은 다양한 사회적 힘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정세 속에서 어떤 우발적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날 뿐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도 그 시작은 이와 다르지 않았다. 3월 8일(구력 2월 23일) ‘세계 여성의 날’에 식량 부족에 항의하는 여성들이 거리 시위를 벌였고, 이를 진압해야 할 일부 군인들이 시위에 동참해 부패의 온상인 관공서를 점령하면서 차르가 퇴임하는 ‘2월 혁명’이 일어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런 상황이었다. 당시 레닌은 스위스의 취리히에 망명해 있었고, 1917년 1월의 한 연설회에서 “우리 나이든 세대는 이제 다가올 혁명의 결정적인 전투를 보지 못하	]]>
	</description>
	<pubDate>Sat, 12 Jun 2010 18:37:07 +0900</pubDate>
	<dc:creator><![CDATA[텅빈 empty]]></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사진 한장으로 보는 세계사.9 - 러시아 10월 혁명]]></title>
	<link>http://hosu0111.egloos.com/4718104</link>
	<guid>http://hosu0111.egloos.com/4718104</guid>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76x100/http://pds16.egloos.com/pds/201004/07/78/b0071878_4bbc83fa521fe.jpg"  
				alt="사진 한장으로 보는 세계사.9 - 러시아 10월 혁명" 
				width="76px"  
				height="100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이번 포스팅은 상당히 주관적이면서 편파적일지 모르겠습니다. 쿨럭. ※오늘 모 교양강의 듣고 끄적여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놀랐던 부분-_-    10월 쿠데타혁명의 주동자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때는 1917년. 당시 러시아 제국은 독일과의 오랜 전쟁과 전쟁 이전부터 문제가 되었던 각종 사회문제, 낙후된 산업환경으로 인해 몹시 피폐해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영국, 프랑스, 독일같은 선진국가들과 달리 전제군주정이 지속되어 정치활동의 자유가 억압되어 왔었는데, 그런 가운데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 농민들이 빵부족 사태에 불만을 터트리면서 전제군주정에 반대하는 세력이 (러시아력으로) 2월 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혁명으로 당시 차르였던 블라디미르 푸틴니콜라이 2세가 체포되어 일족들과 시베리아의 어	]]>
	</description>
	<pubDate>Wed, 07 Apr 2010 23:06:46 +0900</pubDate>
	<dc:creator><![CDATA[대한민국 친위대의 카라친위대 사령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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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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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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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t="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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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레닌의 전기나 트로츠키 자신의 저작들, 그리고 러시아 혁명사 전반의 저서들을 간추려 보면, 트로츠키의 이력은 간단하게 요약된다.  - 26세의 젊은 나이에 레닌보다 영향력 있었던 천재적 사회주의혁명이론가/연설가 - 레닌과 협력하게 된 이후 그의 가장 탁월한 조력자 - 레닌 사후 스탈린과 대립하여 망명생활 - 망명 중 &amp;lt;영구혁명론&amp;gt;, &amp;lt;러시아혁명사&amp;gt; 등의 수많은 저서 집필 -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  유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quot;역사에 있어서 'What if(만약 이렇지 않았다면, 혹은 만약 이랬다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다'&quot;고 말했다. 독보적인 지성과 통솔력을 지녔던 트로츠키가 스탈린 대신에 정권을 잡았더라면, 혹은 생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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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0 Mar 2010 00:00:53 +0900</pubDate>
	<dc:creator><![CDATA[fogman]]></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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