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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글루스 '인문학적제어론' 태그 최근글</title>
		<link>http://valley.egloos.com/tag/인문학적제어론</link>
		<description>인문학적제어론</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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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1 Nov 2008 16:18:1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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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인문학적 제어론 (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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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제어론  과학과 철학은 대립하는가 (노정태님)    '인문학적 제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문학'이란 그 자체로 옳고 바르고 합리적이며 다른 종류의 지식에 대해 교정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어떤 문제가 인문학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똑같은 전제를 공유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도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으며 옳지도 않다.    인문학은 단수가 아니다. 정치철학에는 레오 슈트라우스에서 안토니오 네그리까지 다양한 입장들이 있다. 네오콘은 무식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문학적 교양과 지식을 풍부하게 갖춘 사람들이다. 문제는 그 교양과 지식의 내용이 어떻냐 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quot;인문학이 부족하기 때문&quot;이라고 말한다면 이런 각각의 인문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은폐하게 된다.    노정태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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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1 Nov 2008 16:18:1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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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인문학적 제어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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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에서 노정태님이 단 댓글 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창조과학같은 사이비 과학이 미국에서 판치는이유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단의 '열심'을 제어할만한 인문학적 소양이 그 사회에 부족하기때문이라고. 창세기의 창조 설화가 '우화'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아우구스티누스 시대부터 상식이 되어있습니다만, 그게 진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면 '현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의 유물'로 취급되느냐는 다른 문제죠.   이와 같이 인문학이 무엇을 제어해야 한다 또는 제어할 수 있다는 관점을 '인문학적 제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제어대상으로 손꼽히는 것이 아마 과학일 것이다.    이런 제어론에는 인문학이 '해독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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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4 Nov 2008 15:43:0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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