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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글루스 '역사' 테마 최근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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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28 May 2012 11:45: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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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글루스 '역사' 테마 최근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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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남중국해의 지배자, 해적왕 정지룡(3) ─ 패권을 잡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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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정지룡과 다가와 사이의 관계는 나중에 정성공의 이야기를 위해 남겨두고, 우선 둘 사이와의 관계하곤 상관없이 정지룡에게는 또다른 혼담이 들어옵니다. 이단의 조직내에서 정지룡에게 안(顔) 씨라는 여자와 관계를 맺을 것을 권한 것이었습니다.안씨는 복건 출신으로 이단 패밀리의 일원이 된 안사제(顔思齊)라는 인물의 딸이었습니다. 즉, 이 결혼은 정지룡 내에서 조직내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해보였기에, 정지룡이 이단의 후계자 자리를 노린다면 반드시 해야만 했을 결혼이었습니다. 이 말은 정지룡이 안씨와 결혼하게 되면 다가와는(관계를 언제 맺었건) 정실 부인이 될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안씨 부인과의 관계에서 정지룡은 정세습, 정세도, 정세음, 정세은이라는 자식들을 두게 됩니다. 그러던 중, 네덜란드가	]]>
	</description>
	<pubDate>Mon, 28 May 2012 11:45:03 +0900</pubDate>
	<dc:creator><![CDATA[매그니토]]></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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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당 역사연구소] 당 역사연구소와 급양대의 부글부글 키친 7/13 (브금주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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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100x76/http://pds22.egloos.com/pds/201205/28/07/e0017807_4fc29eacd10a9.jpg"  
				alt="[당 역사연구소] 당 역사연구소와 급양대의 부.." 
				width="100px"  
				height="76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당 역사연구소] 당 역사연구소와 급양대의 부글부글 키친 6/13 (브금주의)         이번에는 잠시 눈을 돌려서, 재료가 아닌 하나의 요리에 관한   어...그러니까, 죽류(Pottage[英])와 관련된 글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죽 말입니다.    흔히 죽이라 하면, 저급으로 쳐주는 식사...그러니까, 죽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쌀+물+새우젓=미음이라는 맛대가리 없는 환자식이라는 인상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이런 죽이라도 있는 게 감지덕지였습니다. 저번의 빵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당시 농업생산량은 인구에 비해 턱없이 낮았던 상황을 반영한 요리거든요. (다시 강조하지만) 그나마 당시 알짜배기 땅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 왕국 기준으로, 누구나 빵 - 비록 밑에 있는 사	]]>
	</description>
	<pubDate>Mon, 28 May 2012 11:41:51 +0900</pubDate>
	<dc:creator><![CDATA[LVP의 お姉黨舍]]></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진중권 교수가 증언하는 박정희, 전두환 시절]]></title>
	<link>http://thereisnot.egloos.com/634662</link>
	<guid>http://thereisnot.egloos.com/634662</guid>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100x76/http://pds23.egloos.com/pds/201205/28/16/d0150616_4fc2e45ed41ed.jpg"  
				alt="진중권 교수가 증언하는 박정희, 전두환 시절" 
				width="100px"  
				height="76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어떻게 살았기는... 할 거 다 했으니까 살았겠지. 진중권 고교시절 : 1979년 ~ 1981년 #!/unheim/status/203161173540081665	]]>
	</description>
	<pubDate>Mon, 28 May 2012 11:38:19 +0900</pubDate>
	<dc:creator><![CDATA[知者不言言者不知]]></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바다를 제압하려고했던 적량진성 답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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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100x76/http://pds24.egloos.com/pds/201205/28/07/a0105007_4fc2cf216009c.jpg"  
				alt="바다를 제압하려고했던 적량진성 답사기" 
				width="100px"  
				height="76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적량진성을 답사하려고 계획에도 없었는데 본의 아니게 적량진성을 답사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연휴가 시작되어서 그런지 삼천포에서 남해로 넘어가는 길이 너무 막혀서 차안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다보니 남해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바닷가에 있다가 갑자기 적량진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량진을 가게 되었습니다.  적량진의 경우 동측으로는 고성의 소을비포진과 사량진(현재는 통영시 사량도)이 있으며 남측으로는 미조진(지도에는 보이지 않음) 상주보 등이 위치한 곳입니다. 적량진이 위치한 곳은 현재 남해군 창선도(창선면)인데 조선시대 당시에는 창선도의 관할은 남해군이 아니라 진주목이었습니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 의하면 적량진에는 군병선 7척, 무군병선 6척, 기선군 700명이라 전하고 있습니다. 적량진성은 통영통제사에 소관 	]]>
	</description>
	<pubDate>Mon, 28 May 2012 10:57:23 +0900</pubDate>
	<dc:creator><![CDATA[팬저의 국방여행]]></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개인의 영향력]]></title>
	<link>http://kalnaf.egloos.com/3329252</link>
	<guid>http://kalnaf.egloos.com/3329252</guid>
	<description>
	<![CDATA[ 
현대 사회는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인해 고도로 밀착되고 다양하며 복잡한 사회를 이루고 있다.  과거 사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역사에 있어서의 개인의 영향력은 그만큼 축소되어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뿐인가?    무슨 하버드 경제학과를 스무살에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원도 다 끝마치는 천재 학생? 높이 높이 날아올라 나라를 이끌고 굵직굵직하게 역사책에 이름을 남길까? 기껏해야 월가에 취직해서 경력쌓고 귀국해서 뭔가 무슨 펀드니 펌이니 아니면 연구소니에 취직해서 돈이나 벌겠지. 그런 사람이 어디 한 둘도 아니다.     '대단한 사람'이 그 '대단함'을 뽐내고 특출나게 역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다 옛날 일 아닐까.    크게 예를 들자면 전쟁을 이끄는 장군의 영향력은 어디까지인가 	]]>
	</description>
	<pubDate>Mon, 28 May 2012 08:53:57 +0900</pubDate>
	<dc:creator><![CDATA['3월의 토끼집']]></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양반, 한 가지 땅을 빼앗기다 1]]></title>
	<link>http://dk7117.egloos.com/2316706</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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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과전법에는 답험손실 외에도 또 하나의 제도적 모순이 있었다. 수신전과 휼양전을 매개로 과전의 세전을 인정한 것이다. 이로 인해 머지않아 과전 부족 현상이 나타났고, 연이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의 개편이 뒤따랐다.여말(麗末)에 사전 개혁을 주도한 조준(趙浚)은 과전법 규정을 마련하면서 과전을 비롯한 사전의 경기 내 지급 원칙을 천명하였다. 과거 외방(外方)에 지급한 사전의 폐해를 거울삼아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왕도에서 가까운 경기에 사전을 두면 전주의 불법을 통제하기 쉬울 뿐 아니라, 총량 규제를 통해서 사전이 무제한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준도 사전 폐해의 더 중요한 요인인 이의 세전성(世傳性)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아니 고려의 전시과에	]]>
	</description>
	<pubDate>Mon, 28 May 2012 08:38:28 +0900</pubDate>
	<dc:creator><![CDATA[역사 그리고 피빛 향기]]></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마키아 벨리의 용병에 대한 관점..]]></title>
	<link>http://turmibear.egloos.com/5111257</link>
	<guid>http://turmibear.egloos.com/5111257</guid>
	<description>
	<![CDATA[ 
일단 제가 마지막으로 군주론을 읽어본게 아마 2년쯤 전이었을 꺼고...    제가 현제 군주론 책이 없기에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기억하는 바로는    "용병은 무능하나 유능하나 쓸모가 없다. 무능한 용병은 전투에서 지기에 쓸모가 없고, 용병대장이 유능하다면 그 스스로가 세력을 일으켜 국가를 전복시킬 위험이 있기에 쓸모가 없다."      정도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거 같습니다. 앞에서 밝혔다싶이 읽어본지 좀 됬기에 부정확할수 있습니다.      아무튼 사상적인 면은 빼놓고    과연 그의 주장들이 과연 당시의 사회에서 현실적이었을지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그가 로마빠의 냄새를 풍겼으며, 소드 앤 실드 스타일의 병사를 육성하자고 했다는데...전 그 부분이 기억나지 않기에 일단 패스 합니다.)    	]]>
	</description>
	<pubDate>Mon, 28 May 2012 04:03:27 +0900</pubDate>
	<dc:creator><![CDATA[터미베어의 베틀바지]]></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조선 근대화 실패는 일본보다 중국의 책임이 더 크지 않나요?]]></title>
	<link>http://pornoworld.egloos.com/3329187</link>
	<guid>http://pornoworld.egloos.com/3329187</guid>
	<description>
	<![CDATA[ 
삼일천하 - 갑신정변  조선을 땅따먹기 하는데 있어 최종 승자가 일본이 되었다 뿐이지 사실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중국 이놈들때문에 열받을 때가 무진장 많습니다.  갑신정변 당시까지를 보면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 의도가 없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신들도 살기 위해서 열심히 러시아, 청나라와 싸우다보니까 어느새 조선이 식민지로 되어 버렸다더라라는 상황인 것이죠.  흔히 자신은 원래 최고 권력자가 될 생각이 없었는데 자신의 가족, 연인 등을 지키려는 소박한 꿈이 결국엔 최고권력자로 만드는 아이러니가 역사엔 항상 있지 않습니까.  일본의 경우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각설하고 구한말 역사를 들여다보면	]]>
	</description>
	<pubDate>Mon, 28 May 2012 01:27:46 +0900</pubDate>
	<dc:creator><![CDATA[평민 한국남성 권익 보호 위원회]]></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武神-실제로는 김윤후가 살례탑을 죽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title>
	<link>http://glamorator.egloos.com/10891366</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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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작성자 : []작성한 글 목록 닫기  작성일 : 2012.05.27 23:05 조회:추천:번호:4276   사서에는 몽골의 2차 침공에서 몽골군의 원수 살례탑이 처인성 공성전에서 김윤후에게 활로 사살당하였다는 기록되어 있으며 처인성전투의 지휘관 김윤후가 살례탑을 사살하였다는 인식이 일반적인데 인식과는 달리 사료에서 정작 김윤후는 피난민이라 기술되어 있으며 고려사 김윤후 열전에서의 김윤후는 자신은 전투 당시에 활도 화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서 상을 사양하는 구절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발언은 김윤후의 겸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김윤후의 언급이 사실이라면 살례탑은 김윤후가 아닌 혹자의 유시( 流矢 )에 사살되었으며 김윤후는 고려조정의 의도적인 처인성전투의 영웅만들기 논공행사의 수혜자로 선정되어 고사하였	]]>
	</description>
	<pubDate>Sun, 27 May 2012 23:29:24 +0900</pubDate>
	<dc:creator><![CDATA[^^]]></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고려도경을 읽어보니...]]></title>
	<link>http://goddls1.egloos.com/5641772</link>
	<guid>http://goddls1.egloos.com/5641772</guid>
	<description>
	<![CDATA[ 
한국고전종합DB에 송나라 서긍이 쓴 고려도경이 올려져 있길래 읽어보고 있습니다. 서긍이 틈날때마다 '오랑캐' 운운하는 것을 참고 넘어가면 그런대로 읽을만한데 의약에 관련된 제도를 설명하면서 고려는 다른 물화는 모두 물건(쌀이나 베, 혹은 은병)으로써 교역했으나, 오직 약을 사는 것은 간혹 전보(錢寶: 화폐를 의미)로써 교역하였다.는 대목이 눈에 띄더군요. 아시다시피 고려는 대각국사(이자 승통인) 의천의 주장으로 해동통보가 주조된 것 이외에도 동국통보, 동국중보, 건원중보, 동국중보, 삼한중보, 삼한통보 등의 동전을 주조하여 유통하려 시도했으나 그다지 큰 성과는 없었는데 의약품 거래에 관한 건 예외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쪄면 서긍이 오기 훨씬 전인 숙종 9년(1104)에 각 주현 등에 주식점酒食店을 열고 여	]]>
	</description>
	<pubDate>Sun, 27 May 2012 23:01:05 +0900</pubDate>
	<dc:creator><![CDATA[행인1 혹은 갑사1의 놀이터? 혹은 비밀기지?]]></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로마 문학의 발생 - 몸젠로마사3권 40]]></title>
	<link>http://dontnomuch.egloos.com/2942984</link>
	<guid>http://dontnomuch.egloos.com/2942984</guid>
	<description>
	<![CDATA[ 
제 14장 문학과 예술로마 문학의 성장을 자극한 영향들은 독특하면서도 여느 다른 민족에 거의 비기지 않는 성격이 있다. 그것들을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첫째로 이 기간 민중에 대한 교시와 그 레크레이션(recreation)을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언어지식언어는 모든 정신문화의 뿌리에 놓이며 이는 특히 로마의 경우인 것이다. 그렇게 많은 중요성이 연설과 문서에 집착된 그리고 현대적 관념으로는 아직 어린시절로 간주될 나이에자치회원(Bürger)이 이미 그의 재산에 대한 통제받지 않은 경영을 이미 위임받고 아마도 소집된 공통체에 공식적 연설을 하는 그러한 공동체 내에서, 모국의 말에 대한 유창하고 정련된 사용을 따라 거대한 가치가 매겨지은 물론 소년기에 이의 지휘권을 획득하려는 노력이 일찍 행해졌다. 그리스의 	]]>
	</description>
	<pubDate>Sun, 27 May 2012 19:01:23 +0900</pubDate>
	<dc:creator><![CDATA[漆園의 大逍遙]]></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잉붕어의 난해한 선사시대 설명기! 청동기를 기억하며]]></title>
	<link>http://URAAAAAA.egloos.com/4222964</link>
	<guid>http://URAAAAAA.egloos.com/4222964</guid>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76x100/http://pds23.egloos.com/pds/201205/27/07/d0098007_4fc1e57ddb141.jpg"  
				alt="잉붕어의 난해한 선사시대 설명기! 청동기를 기억하며" 
				width="76px"  
				height="100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짤방은 딱히 모던하지 않은 짤)     정말 오랜만에 하는 포스팅이군요. 그 동안 귀찮아서 안했다는 변명을 하고 시작합니다.  (그리고_이것은_다른_이유.gif)  저번시간의 복습은 그냥 넘어가고 바로 청동기시대를 상징하는 유물인 청동기에 대해서 떠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전에도 저는 청동기에 대해서 잠시 떠든적이 있지요. 오늘은 그 복습 겸 추가입니다.(?)    청동은 아시다시피 구리와 주석을 섞어서 만든 합금입니다. 인류 최초의 합금이라고 불리지요.  청동은 비록 철에 밀려서 주역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특유의 특성으로 아직도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청동기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경도가 높아서 잘 깨지기 때문에 무기로 쓰기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청동기 대	]]>
	</description>
	<pubDate>Sun, 27 May 2012 18:09:48 +0900</pubDate>
	<dc:creator><![CDATA[잉붕어의 모에선을 내뿜고 있는 교단 모노리스 한국 제 1지부]]></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2008년 7월 미국 여행기 (1) - 도착 - 스미소니언 구경 (1)]]></title>
	<link>http://veritasest.egloos.com/2022190</link>
	<guid>http://veritasest.egloos.com/2022190</guid>
	<description>
	<![CDATA[ 
<img 
				src="http://thumb.egloos.net/100x76/http://pds23.egloos.com/pds/201205/27/56/f0041956_4fc19cb177925.jpg"  
				alt="2008년 7월 미국 여행기 (1) - 도착 - 스미소니언 .." 
				width="100px"  
				height="76pxpx"
				align="left"
				style="border:1px solid #DDDDDD;margin:0 10px 10px 0px;"
				/> (*벌써 아주 오랫동안 예고해 드렸던 바이지만, 드디어 2008년 미국 여행기의 첫 글을 써볼까 합니다.)  1. Prologue.  2008년 7월 7일, 이른 아침인데도 이상하리만큼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인천공항으로 나갔습니다. 5주 간에 걸친 짧지만은 않은 기간 동안 미국과 캐나다를 동에서 서로 나아가는 여행의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지요. 전날 밤부터 여행에 대한 기대 때문에 정말 설레었습니다. 사실은 그보다도 한참 전, 몇 주 전부터 여행 계획을 짜고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다 해놓고 하느라 한참동안 부산을 떨었지만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부리나케 탑승수속이니 통관이니 하는 절차를 싹 마치고, 마침내 7월 7일 오전 10시 40분 발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편을	]]>
	</description>
	<pubDate>Sun, 27 May 2012 17:36:19 +0900</pubDate>
	<dc:creator><![CDATA[進省堂居士의 跆緣齋]]></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삼일천하 - 갑신정변]]></title>
	<link>http://Rashidorida.egloos.com/89008</link>
	<guid>http://Rashidorida.egloos.com/89008</guid>
	<description>
	<![CDATA[ 
대학교 들어와서 점점 역사 공부를 게을리 하게 됬는데  오늘부터 주말마다 역사적 사건에 관한 포스팅을 하나씩 해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오늘은 갑신정변에 대해 쓸 것인데 갑신정변이 무엇인가를 보기 전에  당시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한다.  때는 1880년대, 일본에게 개항이 된 뒤 여러 서양의 나라들과 국교를 맺기 시작한다.  그리고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여 동도서기(제도와 문화는 그대로, 과학기술만 받아들이자는 정신)적 개혁을 시작한다.  1882년, 그 개혁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별기군(우리나라 최초의 신식군대)과의 차별의 반발로 일어난 임오군란이 있었다.   별기군은 일본인 교관이 훈련을 맡아서 매일 일본식 훈련을 했는데 그것에 대한 대중적 반발도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임오군란 도중 고위관료와 함께 일	]]>
	</description>
	<pubDate>Sun, 27 May 2012 16:52:31 +0900</pubDate>
	<dc:creator><![CDATA[라시드리다]]></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중국드라마 <한무대제> 주제가 뭔가요?]]></title>
	<link>http://ofhistory.egloos.com/63372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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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한국의 판타지성 환빠드라마랑 질적으로 다르다는 칭송이 자자해서 1편 보는데 깨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잘은 모르겠지만 서설(序設) 부분에서 하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lt;사기&gt;와 &lt;한서&gt;에 근거해서 흉노족과 한족은 근본이 같은 대우(大禹)의 후예이고 우(禹)의 하(夏)왕조가 상(商)나라에게 타도되자 그 일 지류(支類)가 북바응로 도망가서 흉노족을 형성하여 진한(秦漢) 시기에 북방의 최대 강족(强族)이 되었다. 본 드라마는 지금 부터 2000여년 전에 한족과 흉노족의 모순, 투쟁, 전쟁을 통한 최종 민족대융합의 눈물겨운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ㅎㄷㄷㄷㄷㄷㄷㄷ.   흉노족이 대우씨의 후예라? 민족통합과정이 눈물겨워?  &lt;사기&gt;를 찾아보니 이런 기	]]>
	</description>
	<pubDate>Sun, 27 May 2012 16:36:11 +0900</pubDate>
	<dc:creator><![CDATA[TheodoricTheGreat]]></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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